붕어 | [피싱로드 정명화 낚시인생 2편] 10년 만에 다시하는 떡붕어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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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4-01-24 13:34 조회9,860회 댓글0건본문
아마 2002년 11월일 것이다.
중층과 내림낚시를 매개로 한 전문지 '피싱리더'가 첫 창간지를 냈다.
이후 3달이 지나 겨울 어느날,
나는 처음으로 중층낚시를 시작했다.
이때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던 세월이었는데 오늘 드당시가 새삼 실감이 난다.
이갑철(현 FTV 마이웨이 진행자)위원이 대만 내림낚시를 한국에 첫 고급을 했고,
피싱로드(전 피싱리더)가 앞장서
내림리그를 탄생시키며 경기낚시를 전국적으로 보급했다.
내림리그를 탄생시키며 경기낚시를 전국적으로 보급했다.
그때는 내림낚시가 시대의 반영이었는지,
무섭게 타고 흘러 나날이 발전했고,
내림낚시 인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리고 방송 매체나 잡지에서 내림낚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 또한 내림낚시 보급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리고 방송 매체나 잡지에서 내림낚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 또한 내림낚시 보급의 최전선에 있었다.
외국을 다니다 한국에 있는 날이면
당시 피싱리더 노동균 기자와 둘이서 전국을 돌며 내림낚시 대회를 주관하고
또 당시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일일이 기록했다.
또 당시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일일이 기록했다.
아마 내림낚시 1세들이라면 이런 나를 다 기억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 찾아온 것이 바로 떡붕어를 대상으로 하는 중층낚시다.
처음엔 노동균 기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중층낚시 관련 단행본 세권을 단시간에 다 독파했다.
그리고 조금씩 유명하다는 중층낚시인들에게 배워가며 짬짬이 실전 낚시 기볍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국붕어 대상어의 내림낚시를 먼저 시작한 나지만 중층낚시를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당시가 답답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당시가 답답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
전국을 돌며 내림낚시 경기를 주관하면서 가끔 중층낚시를 했으니 나 또한,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낚시대를 같이 사용하다보니
'이것이 중층인지, 저것이 내림인지'
헷갈렸고,
헷갈렸고,
낚시를 하다가보면 고기 낚을 욕심에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많았다.
가장 웃지 못 할 일은 내림낚시 경기를 주관하면서 광고주인 일본 조구 사의 에이젠시에서 일본 유명낚시인을 초청,
시연회를 개최하자고 하면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연회를 개최하자고 하면 정말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나는 강연회 후 항상 비애와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림낚시 경기에 일본 낚시인(중층낚시인)을 데리고 와서 시연회를 하자고 하는 업체나,
피싱로드 또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시연회를 하게끔 해 준 것이 그 당시,
열심히 내림낚시를 한 낚시인들은 얼마나 헷갈리게 했을 지 지금 생각하면 나의 마음이 아프고,
그때 그 낚시인들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당시,
나와 함께 내림낚시를 위해 열심히 뛰어 준 모든 낚시인들에게 이글을 통해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이 부분이 그동안 내가 중층낚시를 멀리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다.
물론 다른 이유도 많지만 말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많지만 말이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침체된 낚시 경기의 회생을 위해서라도,
중층낚시보다는 한참 불붙기 시작한 내림낚시의 활성이 더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 와서 감히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 중층낚시가 그렇게 전락한 동기 중 가장 큰 이유는
중층낚시를 추구하는 몇몇 단체들이 서로의 이익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대회마다 국산 떡밥을 권장한다는 명목으로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떡밥이 아니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좀 더 심하게 말해 중층낚시인들에게 온갖 추태를 다 부렸기 때문이다.
떡붕어 대상어 중층낚시는 일본의 떡붕어 낚시가 우리나라에 보급되며 자리잡은 낚시의 한 장르다.
하지만 그당시,
떡붕어 대상의 낚시 대회에서 일본 떡밥을 못 사용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중층낚시 단체들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대한민국 떡밥 시장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도 모르고 오르지
'일본 제품이라 안 된다'
는 이상한 편견을 가진 단체들이었다.
는 이상한 편견을 가진 단체들이었다.
아니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낚시인들을 우롱했거나...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당시,
중층낚시인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층낚시가 더욱 발전할 수 없었던 이유가 떡붕어의 개체수다.
내가 알고 있기로 떡붕어는 현재
'이식금지 어종'으로 지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부족한 개체수가 가장 큰 이유였고, 고가 장비 선호도 크게 한몫 했다.
지금은 정부 차원의 치어방류 사업(방류한 토종붕어 치어에 떡붕어 치어가 섞었을 확률이 높음)으로 인해
전국의 방방곳곳 대부분의 강과 호수에 떡붕어가 다 사식하고 있으며,
이곳 학서지와 같이 떡붕어 전용 낚시터가 늘어나면 곳곳에 그라운드가 조성되어 있다.
또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있는 저가의 성능 좋은 장비들이 속속 보급되면서
이제는 큰 부담 없이 떡붕어 낚시를 시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중층낚시에 새롭게 도전장을 던졌다.
그래서 이 기볍을 접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지만 또 다시 중층낚시를 배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 나선다.
누군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제 나는 다시 시작이다.
그리고 이런 좌충우돌을 겪어가면서 다시 시작하는 정명화의 중층낚시,
그 해법을 찾아 오늘도 낚시대를 메고 떠난다.
어렵게 낚은 떡붕어 한 마리,
이후 나는 젊은 스승들에게 채비와 떡밥 블랜딩을 좀 더 자세하게 배워가며 여러마리의 떡붕어를 낚아 올렸다.
뭔가 어색했던 행동과 마음도 서서히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이날 마지막 나의 채비는 다음과 같다.
낚시대는 아피스 수어지교 진 9척,
원줄은 카포스 헤라 1호,
목줄은 같은 제품 0.5호,
목줄의 길이는 20cm 에 30cm,
단차 10cm.
바늘은 오니가케 경량 당고히네리 5호를 달았다.
당일 사용한 떡밥은 마루큐 사의
'페레경, 바라케바인다 후레쉬, 갓텐, 스고후, 글루바라, 파우더베이트 헤라' 였다.
가족 같은 마음으로 나의 도전에 용기를 북돋워준 학서지낚시터 사장 내외.
이 이야기는 피싱로드 8월호에 실린 정명화의 10년 만에 다시하는 떡붕어 낚시 이야기 입니다.
취재협조 : 아피스, 피싱그룹 만어 동래본점
출처 : 피싱로드 8월호
출처 : 피싱로드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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