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 | 평산의 한 뼘 다가가는 붕어낚시(57) 우리나라 대낚시는 일본낚시에서 유래? & 올림낚시는 일본식 중층낚시의 아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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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귀섭 작성일22-08-26 11:11 조회1,416회 댓글0건본문
평산의 한 뼘 다가가는 붕어낚시(57)
우리나라 대낚시는 일본낚시에서 유래?
(올림낚시는 일본식 중층낚시의 아류인가?)
송귀섭
FTV 제작위원, 釣樂無極 프로그램 진행
(주)아피스 홍보이사, FTV 제작위원, 체리피시 자문위원
저서: <붕어낚시 첫걸음> <붕어 대물낚시> <붕어학개론>
질문
우리나라 대낚시는 일본에서 유래되었고, 찌 올림낚시는 중층낚시의 아류인가요? 평소에 낚시를 열심히 하며 선생님의 책과 영상을 자주 보는 붕어낚시인입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낚시를 연구하셨고, 이곳 시청자대화방에서 소통을 자주하시는 거 같아 최근 커뮤니티(붕어의0 카페 등)에서 이슈가 된 글 내용 중 궁금한 점을 질문 올립니다. 이슈 주 내용: 1.우리나라 대낚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낚시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다. 아니다. 2.우리나라 올림낚시는 일본의 중충낚시에서 파생된 일본낚시의 아류다. 그러니 올림낚시가 우리나라의 전통낚시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안 맞다. 맞다. 제 생각으로는 ‘올림낚시’를 하려면 자립막대찌가 필요하고, 이 자립찌는 1931년 일본에서 개발하여 유행이 되었다고 하며, 현대에 와서 이러한 올림낚시 형태가 된 거 같습니다.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일제강점기 이전시대에 ‘올림낚시’를 했다는 자료는 찾아보지 못했고, 남구만의 약천집에서도 찌를 사용한 낚시는 기술되었으나 찌 올림에 대한 설명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낚시는 우리나라도 고대 때부터 했던 것이지만 위의 이슈내용처럼 ‘대낚시가 일본으로부터 유입’되었고, ‘올림낚시가 일본의 전층낚시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지요? 물론 저도 ‘올림낚시는 전층낚시의 아류’ 라고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토종붕어의 형태가 떡붕어와 다르기 때문에 일본의 낚시채비에서 토종붕어에 맞게 ‘올림채비’로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 사실관계는 잘 알고 인정할건 인정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선생님의 고견이 듣고 싶어서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
질문자: 마티니02(김영근) 2022.07.21 <군계일학 홈페이지 시청자와 대화 란>을 통한 질문
유사내용 질문: 고기사외 7명(질문 집계기간 2002~2022년, 블로그+팬카페+SNS)
답변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에서 구사하는 찌 올림낚시에 대한 시초는 저도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자료를 찾기 위해서 무수히 노력을 했으나 이에 대한 기록 자체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의 낚시역사는 선사시대부터 해 온 유물이 다수 발굴되어 확인이 되고 있고, 고구려, 신라, 백제 때의 유물이나 기록에서도 확인되는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로 들어서는 한시나 그림으로 표현된 낚시관련 기록이 많이 있고요. 그러니 낚시자체를 다른 나라에서 유입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질문에서 얘기한 대낚시에 대해서는 일제강점기보다 훨씬 전 시대 옛 그림에서의 대낚시모습을 보면 더 이상 논란이 될 수 없는 답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신석기시대에 구사한 우리 조상들의 낚시에서도 비록 투박하긴 했더라도 낚싯대(나무막대기)를 손으로 잡고 구사하는 대낚시를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릴과 같은 원거리투척을 하는 낚시는 고대 중국에서 조차(釣車)라는 요즘의 릴과 유사한 도구가 발명된 이후에야 가능했으나 그마져도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낚시와 더불어서 줄을 멀리까지 풀었다 감았다 할 수 있는 견지낚시를 했었지요. 그러니 대낚시는 인류낚시역사와 시대를 같이 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로부터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고 하는 것은 연관이 없다고 사료됩니다.
또한 찌를 이용한 낚시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부터 그 기록이 나타나는데, 기록으로 보아서는 깃털이나 풀잎 등 물에 뜨는 물질을 줄에 달아서 쓴 것으로 보아 끌려가는 입질을 보고 낚아챘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찌가 솟아 올라올 때 챔질하는 전통 올림낚시의 시초는 이때가 아니고 그 후 시대일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오히려 우리 선조들은 바닥낚시를 하면서도 지금의 전층낚시 형식으로 찌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챔질을 하는 낚시를 했었지요. 또한 근대낚시에 해당하는 일제감점기 때의 기록을 찾아보았는데도 올림낚시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추측컨대 이때에도 잠기는 입질을 보고 챔질을 하는 내림입질 형식의 낚시였을 것입니다. 이로보아 비록 채비나 기법은 지금과 다르더라도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같은 시기에는 같은 찌 내림의 낚시를 구사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서 우리나라 올림낚시에 대해 언급한 최초 자료는 백치 아다다를 쓴 계용묵선생이 쓴 글인 <낚시질 독본>(1939년 월간지 조광 8월호 게재) 내용입니다.
참고로 계용묵 선생의 <낚시질 독본> 중 일부를 원본 그대로 발췌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메기나 가물치 뱀장어 망두기 이런 등속이 물리면 두말없이 깃이 물 속으로 드러가지만 붕어류는 그렇지 않다. 대개 붕어맥은 현저한 것이 네 가지가 있는데 역시 붕어도 큰 놈은 깃이 드러가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극히 적은 일이요 대개는 깃을 물우에 띠운다.>
*여기에서 <깃>은 찌를 말함이며, <붕어맥>은 붕어의 입질 감(感)을 나타내는 말이고, <물우에 띠운다.>는 찌를 물위에 띄운다. 즉 올린다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 중에서 현대적인 찌 올림낚시에 대해 <채비와 찌맞춤 그리고 찌올림과 챔질> 등 찌 올림낚시에 대해 상세히 기록된 자료는 1971년 창간호부터 모아 보유하고 있는 낚시춘추 자료들입니다. 월간낚시잡지인 낚시춘추에는 창간호부터 매월 찌 올림낚시에 대한 선배조사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정밀한 전통찌맞춤과 뜰낚맞춤 등 찌맞춤 요령, 분할봉돌채비와 가지채비 등 다양한 채비, 다양한 입질형태와 챔질요령 등 올림낚시에 대한 기법이 상세하게 설명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낚시잡지뿐만 아니라 매주 발간되는 스포츠 신문에도 올림낚시에 대해 연재한 글이 있습니다.
이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서 자료근거와 제 경험을 토대로 조금 더 접근해 볼게요.
첫 번째: 우리나라 올림낚시가 일본으로부터 전해왔다는 것은 제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올림낚시라는 기법의 낚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올림낚시를 한 기록이 있고, 지금도 일본에서 그런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가능성을 따져볼 수가 있겠으나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초에 제가 일본 붕어낚시 명인을 만나서 같이 낚시를 할 때 일본 명인은 제가 하는 찌 올림낚시를 처음 본다고 했습니다. 특히 나란히 앉아서 밤낚시를 할 때 찌불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을 감상하면서 챔질을 하는 장면에서는 환상적이라고 놀라워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라면서요. 그 때 낚시를 마친 후에 채비를 교환하자고 해서 제가 사용하던 자작찌를 원줄 째 풀어서 주고 그에게서는 아주 가는 초저부력의 중층찌인 平成作(평성작) 찌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니 일본에서 옛날에도 안했고 지금도 하지 않는 찌 올림낚시를 두고 우리의 낚시가 일본으로부터 파급된 아류라고 한다면 모순이지요.
한편으로 중국으로 낚시여행을 가서 중국의 낚시인과 어울려 낚시를 할 때 올림낚시를 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물었더니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한국인에게서 배웠다고 하더군요. 이렇듯이 제가 구미, 유럽, 아시아 등 여러 나라를 여행 할 때마다 꼭 돌아본 낚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루어&플라이 그리고 릴낚시였고, 대낚시는 찌가 끌려가는 찌 내림기법의 낚시였으며, 우리처럼 찌맞춤을 하여 차분한 찌 올림을 즐기는 낚시모습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구사하는 정밀한 찌맞춤의 올림낚시는 그 시초는 아직까지 확인을 못했으나 그렇더라도 분명히 우리나라에서만 전통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세계 유일한 낚시기법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의 중층 떡붕어낚시를 하면서도 간혹은 찌가 다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챔질을 하여 낚아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으나 이것을 우리가 구사하는 올림낚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두 번째: 대낚시는 일본식 낚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해가 안 되네요.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3000여 년 전에 강태공(太公望, 呂尙)이 구사한 낚시가 바로 대낚시였었고,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했을 것으로 사료되며, 자료 중에서 옛 그림에서 낚시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일부 견지낚시를 하는 모습이 있으나 대부분은 대낚시 모습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하상박사의 <한시와 낚시>, 안국진 선생의 <옛 그림으로 떠나는 낚시여행> 등에서 옛 자료를 참고하면 아주 옛날 우리 선조들의 대낚시 모습이 그림과 시조 속에 많이 담겨있습니다.
여기에서 월산대군의 시조 추강에 밤이 드니를 읊어보고 넘어가지요.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배 저어 오노라
이 시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을밤에 강에 나갔더니 물이 차가워 냉수대가 되어 있다.’ 그러니 입질을 받기가 어렵다는 암시. 그리고 그곳에 ‘낚시를 던졌더니 물고기가 입질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구절. 그리고 돌아올 때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로 돌아온다.’는 표현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돌아온다는 느낌 속에 더구나 밝은 달이 입질을 어렵게 했다는 뉘앙스의 표현을 은근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늦가을 냉수대의 물에 달까지 밝은 밤에는 입질을 받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즐긴다고 위안을 하지요. 이 시조에 <낚시 드리치니>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표현은 요즘 대낚시를 들고 휘둘러치기(스윙) 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맞을 것입니다. 즉 ‘월산대군은 배를 타고 나가서 낚싯대를 휘둘러치는 대낚시를 하였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질문에서 표현한 자립막대찌는 민물 찌 올림낚시에는 사용하지 않는 찌입니다. 바다낚시에서나 릴 찌낚시에서 사용하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올림낚시용 찌는 자립찌가 아닙니다. 봉돌의 부력을 조절하여 맞춰서 사용하는 찌지요. 그러니 일본의 자립찌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올림낚시가 되었다는 것은 그냥 재미있는 상상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떡붕어의 알을 연구목적으로 유입한 때는 1968년경이라고 알려져 있고, 치어를 양식용으로 수입한 것은 1972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떡붕어를 대상으로 한 중층낚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이고요. 그 후로 대만식 내림낚시가 중국을 경유하여 유입되어 내림낚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지요.(UP낚시, 속공낚시로 불림) 그러다가 중층낚시도 바닥층 공략의 경우가 있고, 내림낚시도 표층공략의 경우가 있음을 감안하여 2000년대 초에 중층과 내림을 합하여 전충낚시로 칭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보아 올림낚시가 일제강점기 때 영향을 받은 일본 전층낚시의 아류라고 하는 것은 시대적으로도 안 맞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때 우리 수계에 서식하지도 않는 떡붕어를 대상으로 한 전층낚시는 우리나라에서 가능하지도 않았고, 일본 내에서도 떡붕어(헤라부나) 낚시회가 최초로 탄생한 것은 해방 후인 1946년 이었습니다. 즉 그 이전에 우리나라 낚시에 영향을 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층낚시와 올림낚시를 연관을 지운다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우리나라 전통붕어낚시 중에서도 바늘을 띄워서 끌고 가는 입질을 받아내는 띄울낚시라는 기법이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우리붕어를 대상으로 한 낚시 중에 붕어가 떠서 먹이활동을 하는 것에 눈높이를 맞춘 지혜로운 낚시기법이었지요.
* 이상의 답변내용은 제가 모아가지고 있는 자료를 참고하고, 제가 경험한 것을 곁들여서 작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제가 찾지 못한 기록들은 더 있을 것이며, 그 기록들은 더 정확한 답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강태공과 문왕이 만나는 장면 그림
(이때 강태공의 손에 들고 있는 낚싯대는 대낚싯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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